포스테키안
2024 181호 / 알턴십
산골짜기 지하 1,000m에 세워진 과학자들의 놀이터
강원도 정선군 IBS 예미랩
# ‘예미산 아래 지하 1,000m 실험실에서 우주의 기원을 밝히다’, 강원도 정선군 예미랩
안녕하세요, 포스테키안 구독자 여러분! 알리미가 교내외 유명 기업 및 연구실을 탐방하는 알턴십이 열두 번째 이야기로 돌아왔습니다. 혹시 암흑물질1에 대해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지구과학 시간에 존재 여부도 불분명한 데다가 특성도 알려지지 않은 채 우주를 가득 메우고 있는 물질이라고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도 2003년부터 지하 600m 양양 지하실험실을 활용, 이 미지의 물질을 탐색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더 큰 규모의 실험을 위해 지하 1,000m에 거대 지하실험실이 설립되었다고 합니다. 미스터리한 물질을 발견하기 위해 실험실을 짓고 연구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다니, 놀랍지 않으신가요? 저와 박다현 알리미가 강원도 정선군 예미랩으로 직접 찾아가 보았습니다!
# 세대를 이은 연구가 진행되다
정선군 신동읍은 고즈넉하고 경치가 예쁜 작은 마을이었는데요. 그곳에서 저희를 안내해 주실 소중호 박사님을 만나 예미랩으로 이동했습니다. 예미랩은 지상 연구소와 지하 연구소로 나뉘어 있습니다. 폐교된 학교를 개조하여 지상 연구소로 사용하고 있었는데요, 그곳에서 예미랩의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천재 물리학자, 이휘소 박사님을 아시나요? 그는 물리학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물리학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기고 전 세계적으로 큰 인정을 받았습니다. 특히 암흑물질의 후보 중 하나인 WIMP2를 제안했는데요,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의 정신을 이은 제자들이 이곳 예미랩에서 WIMP의 존재를 실험적으로 증명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미랩은 핵입자 물리학 실험의 불모지에서 여러 과학자가 꽃피운 열정과 그 정신이 고스란히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곳이라 볼 수 있겠죠? 소중호 박사님께서는 자신과 같이 물리에 푹 빠진 사람들이 예미랩에 모여 각자의 연구에 몰두한다면 다음 세대에는 세계를 놀라게 할 연구 성과가 나올 것이라 확신하셨는데요, 어쩌면 예미랩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분들의 애정이 가득 담긴 실험실을 둘러본다고 생각하니 앞으로의 일정이 더욱 기대되지 않나요?
# COSINE 암흑물질 탐색 실험과 AMoRE – II 중성미자 특성 실험
드디어 지하 실험실을 방문해 볼 시간입니다. 지하 실험실은 아직 운영 중인 철광 속에 있었습니다. 초속 4m로 이동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2분 30초를 내려가면 예미산 정상으로부터 1,000m 아래에 있는 실험실 입구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COSINE 실험은 늘 우리 주변을 지나다니지만, 전혀 반응하지 않는 암흑물질이 검출기의 원자핵과 충돌하여 남기는 신호를 포착하는 실험인데요. 이 실험의 핵심은 우주로부터 지상에 도달하는 뮤온 입자3를 차폐하는 것입니다. 뮤온 입자가 검출기에 도달해 신호를 발생시키면 암흑물질에 의해 발생한 신호인지 뮤온 입자에 의해 발생한 신호인지 불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미랩은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뮤온을 차폐합니다. 탄광 깊이만큼의 땅과 그 위에 있는 예미산이 이 실험실을 뮤온으로부터 지켜주고 있는 셈입니다.
COSINE 실험실 내부에는 납 벽돌로 둘러싸인 구조물이 있는데요, 납 벽돌 안에는 연구원분들이 수작업으로 만든 WIMP 검출기가 있었습니다. 박사님께서는 연구소 내 수많은 장비들을 직접 제작하고 있다며 자부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여기서 놀라기는 이른데요, 중성미자의 성질을 규명하기 위한 AMoRE-II 실험4을 위한 설비는 훨씬 대단했습니다.
AMoRE-II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연구실을 처음 들어섰을 때 압도적인 스케일에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하 깊은 곳에 동굴처럼 큰 구멍을 뚫고 들어선 거대 실험장비는 웅장했습니다. AMoRE-II에서는 극저온 검출기를 이용하여 100Mo5의 이중베타붕괴6 현상을 관측합니다. 이곳에서도 뮤온과의 싸움은 계속되는데요, 거대한 검출 장비 위로는 순도 100%의 물이 뮤온 신호를 걸러 중성자 신호를 막아주고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플라스틱 벽으로 장비를 한번 둘러싸고, 이로도 부족해 연구진들이 직접 제작한 뮤온 검출기를 그 겉으로 한 번 더 둘러싸 잡음을 제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답니다.
4m 높이의 극저온 탱크를 운반하기 위해 설치된 거대 엘리베이터도 있었는데요, 실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이라 엘리베이터에 탄 채로 실험장비 내부에 들어가 볼 수 있었습니다. 안에서 바라보니 실험장비의 웅장함과 이 모든 것들을 직접 제작했을 연구진 분들의 노고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예미랩, 과학자들의 놀이터가 되다
예미랩은 지금 과학자들의 놀이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기상청에서는 예미랩이 미처 완공되기도 전부터 달려와 지진파 측정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수직 공간에서 캡슐을 자유 낙하시켜 무중력 상태에서 약물의 작용을 실험하는 연구팀도 들어와 있습니다. 달 탐사선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동굴 길에 달과 비슷한 환경을 조성해 임무 수행 능력을 확인하는 실험도 진행한 바 있습니다. 게다가 기업이 아닌 대학 소속의 연구실이라면 무상으로 예미랩의 공간을 제공해 주고 있다고 하네요!
아직 실험장비가 들어서지 않은 채 남겨진 예비 실험실 공간도 방문해 보았는데요. 높이가 몇십 미터는 되어 보인 이곳은 아름다운 공간적 분위기 덕에 영화 촬영이 진행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저와 박다현 알리미도 이곳에서 절묘한 인생샷을 건졌는데요. 예미랩은 과학자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 역시 공존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나아가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합니다.
# 좋아서 하는 물리
소중호 박사님의 물리에 대한 꿈은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언제부터 물리를 좋아하셨느냐는 질문에 “정신 차려보니 저는 물리학을 공부하고 있었고, 다시 한번 정신 차려보니 물리학과에 진학해 해외에서 박사 후 연구과정을 하고 있었고, 마지막으로 정신을 차려보니 이곳 예미랩에 있었습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박사님께서는 예미랩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할 것이 넘쳐나는 곳이라 강조하셨습니다. 박사님께서는 “예미랩이 과학자들을 위한 놀이터가 되기를 바랍니다.”라며 예미랩의 비전을 밝혀 주셨습니다. 저희 알리미가 방문한 예미랩의 모습은 이미 놀이터와 다름없었습니다. 그리고 예미랩을 둘러보고 난 지금은 더 많은 사람이 예미랩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쏟길 박사님과 함께 바라게 되었습니다.
예미랩에 대한 소중호 박사님의 애정은 대단했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저도 제가 연구하고 있는 곳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예미랩에서는 중성미자와 암흑물질의 비밀을 밝히기 위한 물리학자들의 열정이 불타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미래의 포스테키안이 되어 자신이 사랑하는 연구실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연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글. 반도체공학과 23학번 29기 알리미 김세현
알턴십 인턴. 반도체공학과 23학번 29기 알리미 김세현 / 무은재학부 23학번 29기 알리미 박다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