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23 180호 / 포스텍 연구실 탐방기

2023-12-12 366

포스텍 기능성 생체 분자 재료 연구실

POSTECH Biomolecular Materials Laboratory

 

모든 생명체는 구조적, 기능적 기본 단위인 세포를 통해 ‘생명 유지’라는 놀라운 현상을 이뤄내고 있습니다. 단백질은 세포의 생명 현상 유지를 위한 세포 내 핵심적 요소로서 유전정보의 복제/전달/교체, 효소 촉매반응, 목표 분자인식, 물질 출입 통제와 조절 등 매우 다양하고 유익한 생물학적 기능을 수행하며, 특히 인간의 경우 무려 2만 개에 달하는 서로 다른 단백질이 세포 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다양한 기능들은 단백질이라는 아미노산 기반의 선형 생체 고분자(Linear Biopolymer)만의 고유한 특성일까요? 단백질이 다양한 생물학적 기능을 수행하는 원리를 이해한다면 다른 생체 고분자를 이용하여 그 기능들을 재현해 내거나 심지어는 단백질의 기능 그 이상을 수행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 위해 포스텍 신소재공학과의 기능성 생체 분자 재료 연구실은 오승수 교수의 지도하에 단백질 모방학(Proteomimetics)과 세포 모방학(Cytomimetics)이라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분야에서 선도적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20종류의 아미노산으로만 이루어진 2만 개의 서로 다른 단백질이 각각 고유의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기만 합니다. 이는 단백질이 고유한 접힘 구조(Protein Folding)에 따라 독특한 3차원 나노구조를 갖기 때문입니다. 독특한 3차원 구조는 퍼즐 맞추기처럼 다른 3차원 구조와 상보적인 상태, 즉 분자적 상보성(Molecular Complementarity)을 이룰 수 있고, 항체가 항원을 인식하듯 분자 인식(Molecular Recognition)의 구동 원리가 됩니다. 놀랍게도 이러한 분자적 상보성을 위한 3차원 나노구조는 아미노산이 아닌 핵산(DNA, RNA 등)과 당류(탄수화물 등)와 같이 서열 조절이 가능한 다른 유형의 생체 고분자(Sequence-Controlled Biopolymer)에 의해서도 똑같이 구현될 수 있습니다.

 

그림. 분자 인식(Molecular Recognition)을 가능하게 하는 3차원 나노구조들의 분자적 상보성(Molecular Complementarity).

 

이러한 분자적 상보성을 단백질이 아닌 다른 재료를 통해 구현하기 위해 합리적 분자 설계(Rational Design)1와 시험관 분자 진화(In Vitro Selection)2라는 신개념 기술을 적극 활용할 수 있고, 그 원리는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기념행사에서 동판에 손도장을 남기는 핸드프린팅을 종종 하고는 하는데, 동판뿐만 아니라 석고, 찰흙, 시멘트 등 다양한 재료에도 손 모양과 상보성을 갖는 자국, 즉 각인(Imprinting)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결국 분자 세계에서의 각인(Molecular Imprinting)이라는 과정을 수행할 수 있다면, 서열 특이적 생체 고분자에 대상 분자의 상보성을 새길 수 있습니다.

분자적 상보성의 대상은 정말 다양합니다. 항원에 대하여 분자 각인을 수행하면 인공 항체가 탄생하고, 리간드에 대해서는 인공 수용체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 분자 각인에 촉매적 활동을 더한다면, 기질을 인식하는 인공 효소로 작동할 수 있고, 이 밖에 이온을 인식해 그 흐름의 방향성을 제어할 수 있다면 인공 이온 채널도 충분히 구현해 낼 수 있습니다. 이 밖에 분자 생물학과 합성 생물학의 기술과 융합하면 인공 소기관과 인공 세포를 재창조해 낼 가능성을 갖습니다.

DNA, RNA와 같은 핵산을 이용해서도 기능적으로 항체와 유사한 생체 분자를 만들 수 있는데, 이를 압타머(Aptamer)라고 합니다. 기능성 생체 분자 연구실에서는 이러한 압타머가 펩타이드(Peptide)와 융합하여, 끊임없이 진화하는 다양한 변이의 코로나바이러스에도 보편적 중화 효과를 나타내는 중화 치료제(Neutralizer)로써 활용 가능함을 세계 최초로 보고한 바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 몸에 침투할 때 세포막의 hACE2 수용체와 강한 상호작용을 하며 침투하는데, 이때 바이러스와 결합하는 hACE2의 주요 결합 부위인 펩타이드와 핵산 물질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압타머(Hybrid Aptamer)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결과입니다. 이를 통해 개발한 신개념 물질은 전염력이 가장 높았던 오미크론 변이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코로나바이러스의 변이에도 지속적인 중화 효과를 보이고 있고, 독감을 포함한 다양한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혁신적 방법론으로 인정받아 관련 내용은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게재됐습니다.

핵산 물질인 압타머는 단백질과 같은 거대 분자뿐만 아니라 이온처럼 크기가 작은 물질에도 특이적으로 결합할 수 있습니다. 칼륨 이온이 존재할 때, DNA 염기 중 하나인 구아닌(Guanine)은 사중 나선 형태로 특징적 구조를 형성할 수 있고, 이러한 구조가 지질 이중막을 가로질러 방향적으로 배열되면 칼륨 이온을 선택적으로 통과시키는 이온 채널로서 동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새로운 인공 투과막은 물 분자, 음이온 및 다원자 양이온의 투과를 100% 차단할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리튬 이온의 투과도에 비해 칼륨 이온을 5배 이상 투과하는 놀라운 특성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나노 두께의 이온 선택 투과막은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즈’에 올해 게재되었으며, 다양한 이온에 특이적 구조를 방향적으로 배열하여 리튬이나 코발트와 같이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지만 에너지 분야의 핵심이 되는 이온에 대한 이온 채널도 개발하고자 야심 찬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기능성 생체 분자 연구실은 핵산 기반의 인공 효소인 뉴클레오자임(Nucleozyme) 연구, 인지질 대신 단백질을 이용한 인공 세포막 연구, 세포 신호를 조절할 수 있는 인공 합성 성장인자 연구와 같이 생체 내 많은 구성 요소를 모방하려는 창의적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분자인식 기반의 초정밀 바이오 결합 기술을 이용한 항체 약물 결합체(Antibody-Drug Conjugate) 연구, DNA와 같은 생체 고분자의 초정밀 3D 나노 프린팅 연구와 같이 다양한 응용 분야로의 확장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재료의 시대를 뛰어넘어 새로운 분자 재료의 시대를 개척하기 위한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니, 관심있는 학생들은 언제든지 활짝 열려 있는 연구실의 문을 용기 있게 두드리길 바랍니다.

 

(글) 포스텍 신소재공학과 오승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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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시뮬레이션을 토대로 분자의 거동을 예측하고 이에 따라 특정 기능을 갖는 새로운 분자를 디자인하는 생체 분자 공학 전략.
2. 다윈의 진화론에 기반하여 매우 다양한 구조의 분자들 가운데 경쟁을 통해 특정 기능을 갖는 분자들만이 생존하도록 스크리닝을 유도하는 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