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22 여름호 / HELLO NOBEL
2021 노벨 화학상
고정 관념을 깨뜨린 제3의 촉매, 비대칭 유기 촉매
오른손을 돌린다고 해서 오른손이 왼손과 똑같은 모양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의 두 손은 생김새는 똑같지만 돌렸을 때 포개어지지 않습니다. 이처럼, 분자식과 분자의 구조가 같은데 화학적 성질은 전혀 다른 화합물이 존재합니다. 왼손과 오른손의 관계처럼 분자를 회전시켰을 때 포개어지지 않는 분자를 거울상 이성질체라고 합니다.
두 거울상 이성질체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생체 내에서 서로 다른 임무를 수행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시로 ‘탈리도마이드’가 있습니다. 이 물질은 1957년에 진정제와 수면제로 판매되기 시작하였는데, 입덧 방지에도 효과가 있어 많은 임산부가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이 물질의 한쪽 거울상 이성질체는 약물의 역할을 수행했지만 다른 쪽 거울상 이성질체는 혈관의 생성을 억제하는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1만 명이 넘는 기형아가 태어났으며, 이는 한쪽 거울상 이성질체는 유용하게 작용했지만 다른 쪽 거울상 이성질체는 독으로 작용한 사례이자 최악의 약물 부작용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처럼 거울상 이성질체들은 화학적 성질이 다를 수 있으므로, 한 가지 거울상 이성질체만을 선택적으로 합성하는 비대칭 반응이 요구됩니다.
거울상 이성질체를 선택적으로 합성하는 방법 중에는 촉매를 사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특정 촉매는 반응물로부터 한 가지 거울상 이성질체만이 합성되게끔 반응을 유도합니다. 촉매는 보통 금속이나 효소로 구성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유기 분자 또한 촉매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전이 금속은 전자를 주고받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분자 내 원자 간의 강한 결합을 끊고 새로운 결합을 형성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을 이용해 화학자들은 여러 금속을 촉매로 사용하였고 촉매의 효율성을 효소와 비슷하거나 능가하는 수준으로 향상시켰습니다. 촉매화학의 또 다른 기둥인 효소는 수많은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생체 내 촉매입니다. 아미노산의 고유한 배열이 각기 다른 3차원 구조를 만들기 때문에, 생체 내에서 한 가지 거울상 이성질체를 선택적으로 합성하는 데 특화되어 있습니다. 이에 많은 연구진이 아미노산을 사용해 비대칭 유기 반응을 개발하고자 하였습니다.
스크립스 연구소의 카를로스 F. 바르바스 3세가 이끄는 연구팀도 그들 중 하나였습니다. 이 연구팀에 속해 있던 벤저민 리스트 교수는 항체 촉매를 연구하면서, 효소 전체가 아닌, 효소가 가지고 있는 아미노산의 일부만으로 반응을 진행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 결과, 효소는 수많은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거대 분자이지만 그중 일부만이 반응에 관여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놀랍게도 효소의 일부분인 프롤린Proline(아미노산의 한 종류)이 촉매의 역할을 수행하여 한 가지 거울상 이성질체만을 선택적으로 합성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리스트 교수는 이 연구로 유기 분자를 이용한 비대칭 반응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또 다른 화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유기 촉매 반응Organocatalysis’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데이비드 맥밀런 교수입니다.
맥밀런 교수는 원래 금속 촉매를 이용한 비대칭 반응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이 비대칭 반응에 사용되는 금속 촉매는 대체로 산소와 수분에 민감하고 가격이 비싸 산업적으로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맥밀런 교수는 가격이 저렴하고 쉽게 사용할 수 있으며 전이 금속을 대체할 수 있는 촉매를 개발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연구를 진행하던 중에, 그는 아민1과 이미늄 이온Iminium Ion이 가역적으로 전자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후 이미늄 이온이 금속 촉매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이를 그림 3과 같이 딜스-알더 반응(탄소와 탄소가 결합하는 고리화 반응)에 적용하였습니다. 그 결과 금속 촉매가 아닌 유기 촉매를 사용해서 거울상 이성질체 중 한 가지만을 선택적으로 합성할 수 있었습니다.
유기 촉매는 효소와 금속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촉매를 사용하여 기존의 촉매가 가지고 있던 단점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사실, 리스트 교수와 맥밀런 교수가 처음으로 유기 촉매를 개발한 연구자는 아닙니다. 이미 간단한 유기 분자를 이용해 비대칭 촉매 반응을 성공시킨 적도 있으며, 그중에는 심지어 프롤린을 촉매로 사용한 사례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리스트 교수와 맥밀런 교수는 처음으로 유기 촉매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으며, 메커니즘에 관한 깊은 연구와 유기 촉매에 관한 후속 연구를 통해서 이를 제3의 촉매 분야로 발전시켰습니다. 간단하고 저렴하며 친환경적인 유기 촉매는 실험실에서뿐 아니라 공업적으로도 널리 사용되었으며, 비대칭 촉매 반응을 요구하는 제약 산업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리스트 교수와 맥밀런 교수는 2021년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비대칭 유기 촉매는 ‘제3의 촉매’로 불리며 현재까지도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 리스트 교수는 온화한 조건에서 친환경적으로 거울상 이성질체 중 한 가지만을 선택적으로 합성하는 ‘완벽한 반응’을 목표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한편, 맥밀런 교수는 유기 촉매 반응뿐 아니라 광화학2, 근접성 레이블링3, 전합성4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각주]
1.암모니아의 수소 원자가 탄화수소로 치환된 분자
2.빛에 의해 발생하는 화학 반응을 연구하는 화학
3.관심 있는 단백질과 인접한 생체 분자에 필요한 정보를 붙이는 실험적 기술
4.간단한 분자로부터 복잡한 분자를 합성하는 것
글 / 화학과 통합과정 남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