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성과

[POSTECH의 연구성과] 화학 김기문 교수팀, 구멍 숭숭 뚫린 초분자로 신약 만든다

2019-06-21 1,148

김기문 교수님
분자의 세계에는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가 있다. 그런데 왼손 분자는 병을 고치는 능력이 있지만, 오른손 분자는 오히려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킨다. 약을 만들 때는 왼손과 오른손이 둘 다 생겨나는데, 이 중 필요한 것만 만드는 획기적인 방법이 없을까.

‘왼손잡이 분자’만 걸러낸다?

김기문 화학과 교수는 지난 2000년 5월, 분자계의 왼손과 오른손잡이, 즉 키랄 화합물에서 둘 중 하나만을 선택적으로 합성하는 다공성결정촉매를 세계 최초로 합성해 ‘네이처’에 발표했다. 키랄 화합물이란 오른손과 왼손처럼 마치 거울에 미친 듯이 서로 대칭되는 구조를 갖는 화합물(이성질체)이다. 분자를 구성하는 요소는 같지만 화학적인 특성이 전혀 다르다. 예를 들어 신경안정제인 탈리도마이드의 이성질체는 임산부가 먹으면 기형아를 만드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그래서 신약을 개발할 때 필요한 이성질체만 골라내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김 교수팀이 개발한 ‘포스트원(POST-1)’은 벌집처럼 안쪽에 구멍이 많은 다공성물질이다. 구멍이 키랄 구조를 갖도록 만들면 원하는 키랄 화합물을 선택적으로 만들 수 있다. 특히 이 물질은 기존의 다른 촉매와 달리 몇 번이나 반복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제는 나노호박이다!

김 교수는 인공수용체인 쿠커비투릴의 새로운 동족체를 합성했다. 쿠커비투릴은 ‘나노호박’이라는 별명답게 나노미터(nm·10억분의 1m) 크기로 작은데다, 원자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속이 비고 둥글넓적한 호박처럼 생겼다. 그래서 그 이름도 호박의 학명인 쿠커비타세(Cucurbitaceae)에서 따왔다. 김 교수가 발견한 7단위짜리 쿠커비투릴은 지름이 2nm, 높이가 1nm 정도다.

김 교수는 쿠커비투릴을 이용해 고분자 나노캡슐을 만들었다. 나노캡슐은 안에 약물을 담은 채 체내를 이동하면서 적절한 곳에 약물을 배달할 수 있다. 그는 쿠커비투릴을 메탄올용액에 넣었다가 뺀 뒤 자외선을 쪼여 공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 약물을 넣어 나노캡슐로 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쿠커비투릴 나노캡슐의 표면에는 특정 항원과 반응하는 분자를 붙여 병을 진단할 수도 있다. 2010년 김 교수팀은 쿠커비투릴과 페로센 결합체를 이용해 세포막에서 단백질을 분리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세포막 단백질을 분석하면 특정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다.

김기문 교수는 “무기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딴 뒤 그전까지 하지 않았던 새로운 연구에 도전해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노벨상 수상자인 양첸닝(C. N. Yang) 박사의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어라, 그 분야와 함께 성장하리라”는 말에 영감을 받아 초분자화학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김 교수는 “분자 간 상호작용을 이용해 분자집합체를 만들어 활용하는 학문인데, 처음에는 익숙한 분야가 아니라서 고생을 많이 했지만, 노력한끝에 좋은 결실을 얻고 있다”며, “과학자는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