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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겨울호 / 학과 탐방 Ⅰ / 생명 현상의 보편성과 다양성에 대한 탐구 그리고 활용 생명과학과

2019-03-12 546

생명 현상의 보편성과 다양성에 대한 탐구 그리고 활용 생명과학과

갓 입학하였을 때, 생명과학에서 뭘 공부하고 연구하냐는 질문을 들으면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곤 했습니다. 생명과학 공부가 재밌어서 오기는 왔는데, 뭔지는 설명을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던 거죠. 이제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생명 현상의 가늠할 수 없는 다양성과 그 기저에 숨어있는 보편적 원리에 대해서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뜬구름 잡는 소리 같아서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더 나은 표현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DNA 선명도 이미지

잠시 밖을 내다 봅시다. 무엇이 보이시나요? 기숙사 창 밖에는 낙엽이 지고 가지만 남은 나무들 밖에 보이지 않네요. 그러나 자세히 보면 새들이 날아다니고, 곤충이 기어 다니고, 고양이도 뛰어 다닙니다. 이들 외에도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생물만 해도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합니다. 그러나 보이는 생물보다 미생물처럼 보이지 않는 생물이 더 많다는 사실은 생명의 다양성을 다시금 깨닫게 합니다. 주변을 벗어나 산이나 강, 바다에 가면 그 다양성은 정말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도저히 생물이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메마른 사막, 수심 몇 천 미터의 깊은 바다 속, 높은 산 위의 녹지 않는 만년설, 펄펄 끓는 온천수에도 생명체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구 전체에 걸쳐, 정말 다양한 환경에 다양한 생물들이 적응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체는 그토록 다양하면서도 동시에 놀라울 만큼 비슷합니다. 모든 생명체는 세포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변과 상호 작용하고, 후손을 남기고자 합니다. 그 외에도 물리적, 화학적 제약에 의한 보편성들도 존재합니다. 보편성에 대한 연구는 왓슨과 크릭이 DNA 구조를 밝혀내고 중심 원리(Central Dogma)가 체계화 되면서 급속하게 발전합니다. 모든 생명체는 DNA 형태로 유전 정보를 저장하고 그 정보에 따라 합성된 여러가지 RNA와 단백질이 각자 맡은 기능을 수행하게 됩니다. 또한, 단백질을 합성할 때 사용되는 유전 암호(genetic code)도 거의 모든 생명체에서 동일합니다. 보편성에 대해서 노벨상 수상자인 자크 모노는 다음과 같은 말도 합니다.

“What is true for E. coli is true for the elephant.”

어떻게 다양하면서 동시에 비슷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질문은 진화(evolution)라는 개념이 답변해 줍니다. 공통 조상으로부터 긴 시간 걸쳐 다양한 종들이 분화해 왔다고 진화론은 말합니다. 변이(variation)가 생겨나고 환경에 따라 적합한 변이가 자연선택되는 과정이 지구의 역사에 걸쳐 진행되며 다양한 종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나 매우 중요하고 필수적인 부분에 생긴 변이는 생명체에게 치명적인 경우가 많고, 그런 변이는 자연선택에 의해 제거됩니다. 따라서 중요한 부분은 변화하지 않거나 매우 느리게 변화하여, 모든 생명체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모든 생명체들이 하나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진화했다는 점과 변화가 용인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점이 생명체들 사이의 보편성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다양하면서도 보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종에서 새롭게 발견된 생명 현상을 다른 종에 적용해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어떤 생물에서 발견된 특별한 생명 현상이 보편성은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종에서도 활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유전자 가위(CRISPR)가 있습니다. 유전자 가위는 미생물이 바이러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로서 발견되었으나, 현재는 유전 공학의 핵심 기술 중 하나로 미생물은 물론이고 동식물 연구 및 육종 연구에 널리 활용되고 있습니다. 비슷한 사례로 TALEN과 제한 효소도 있습니다. TALEN은 식물이 세균에 감염되는 것에 대한 연구에서, 제한 효소는 세균이 바이러스를 방어하는 것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발견된 종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생명체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새롭게 발견된 생명 현상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은 생명과학 연구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새로운 생명 현상에 대해 몰두하여 연구하다 보면, 그 속에서 보편성이 발견되기도 하고 새로운 생명 공학 기술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생명과학에서 빼먹을 수 없는 키워드인 다양성과 보편성에 대해 이야기해 봤습니다. 지구 상에는 헤아릴 수 없을만큼 다양한 생명체가 보편적인 성질을 공유하면서 살고있다고 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끝 없는 다양성과 그 다양성을 묶어주는 보편성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생명과학입니다. 순수한 지적 탐구의 측면 외에도, 생명과학은 동시에 질병 문제의 해결, 식량 생산성의 향상, 지구 환경 및 생태계 보호와 같은 아주 중요한 임무를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임무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과 순수한 지적 호기심, 이 두 가지 모두 생명과학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원동력이고, 많은 학생들이 생명과학 공부를 시작하는 계기가 됩니다. 생명 현상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거나, 앞서 말한 중요한 임무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생명과학을 공부하는 것은 분명히 가치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학문 소개에 지면을 너무 많이 투자하여 학과 홍보는 간략하게 해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은 점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해 준다는 것입니다. 교과서를 통해서 지식을 습득하고 익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며 절대 소홀히 하면 안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지식 습득 능력은 과학을 하기 위해 필요한 많은 능력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과학을 하는 것은 사람들과 토론하며 소통하는 능력, 발표 능력, 실험 수행 능력, 실험 결과나 생각을 글로 설명해 내는 능력, 스스로 질문을 찾아내는 능력 등 다양한 요소를 필요로 합니다. 포항공대 생명과학과는 학생들에게 그런 다양한 능력을 연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발표와 토론 위주의 수업이 많고, 실험 수업이 아주 체계적이며, 심지어는 의사소통 능력 함양을 목표로 하는 수업도 있습니다. 그리고 폭 넓게 제공되는 연구 참여 기회를 활용하여, 새로운 지식을 찾아내는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생명과학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김재범 | 생명과학과 15학번

김재범 | 생명과학과 15학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