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17 겨울호 / Science Black box / 투잡을 가진 과학자

2018-01-17 47

Science Black box / 투잡을 가진 과학자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하나의 분야에서도 성공하기는 쉽지 않은데요, 지금 여기에 과학자로서 과학에 흥미를 잃지 않으면서 또 다른 직업을 함께 가지고 있던 “투잡을 가진 과학자들”을 소개합니다!

당대를 대표하는 천재 예술가이자 발명가,
과학자 레오나르도 다빈치 (1452.04.15 ~ 1519.05.02)

157-19-1
신비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는 모나리자를 그린 이탈리아의 천재 미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과학, 기술, 철학 등의 분야에서도 예술 분야에 버금가는 뛰어난 업적을 세웠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탈리아 밀라노에는 과학의 발전과 새로운 공업 기술을 소개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국립과학기술관’이 있을 정도입니다.

157-19-2

1942년 피렌체 빈치에서 공증인 세르 피에로와 가난한 농부의 딸 캐서린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그는 사출로 태어난 이유 만으로 당시 지식인들의 언어인 라틴어와 히랍어를 배울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그가 제시한 기발한 아이디어와 연구들은 다른 과학자들 사이에서 무시받았습니다. 그는 서출이기에 당시 인정받던 직업인 의사나 법률가는 되지 못했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예술가가 됩니다. 하지만 그는 유명한 작품을 남기는 와중에도 과학에 대한 흥미를 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류가 처음 심해 잠수를 성공하기도 전에 인류 최초의 잠수복을 생각하였고, 비행기를 발명하기 400년 전인 당시 하늘을 나는 기구를 고안하였습니다. 또한, 축융기 등 물을 이용하는 여러 발명품도 생각해 냈습니다. 다빈치는 기계적인 원리를 꿰뚫고 있었고, 이러한 지식은 그의 발명품에 잘 녹아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비치는 해부학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는 인간의 몸을 잘 그리기 위해 스승 베로치오에게 인체해부학을 배웠고 이후에도 움직임에 따른 근육과 골격의 변화를 기록하였습니다. 이를 인정받아 당시 금지되어 있던 인간 사체 해부의 권한이 다빈치에게는 허락되었고, 그는 사상 최초로 인체를 해부하여 30년 간의 연구를 통해 200개 이상의 신체 도면을 그리고 인간의 생리학적 구조와 기능을 알아내고자 하였습니다. 나아가 동물의 사체들도 관찰하여 인간의 신체구조와 비교하기도 하였습니다.

157-19-3

그는 인간의 눈이 사물에 반사된 빛을 감지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 냈는데, 당시 눈에서 빛이 나와 사물을 비춘다는 생각이 지배했던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생각의 전환입니다. 또 그는 1500년대 초, 누오보 수도원 부속병원에서 동맥경화라는 인류 역사상 획기적인 발견을 해냅니다. 이 병은 그 이후 밝혀지지 못하다가 20세기 초나 되어서야 재발견됩니다. 또한, 그는 루카 파치올리의 제자가 되어 수학적 비율에 관한 논문인 “De divina proportione”도 발표하였습니다.

하지만 교황 레오 10세 밑에서 일하면서 교황의 눈 밖에 나게 되었고, 교황의 첩자가 만든 음모에 빠져 결국 연구를 중단합니다. 이러한 역경 때문에 그의 발견은 위대한 것이었음에도 인류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당대를 대표하는 천재 예술가이자 발명가, 과학자라는 사실은 모두가 인정할 것입니다.

첼리스트 과학자,
고봉인 (1985~)

157-19-4
출처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9/10/0200000000AKR2017 0910031700005.HTML

대한민국에서 투잡을 가진 과학자는 바로첼리스트 과학자 고봉인입니다. 이름을 알리기 힘든 분야인 음악과 과학 모두에서 성공하여, 2008년에는 북한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최초 남한 첼리스트로 역사의 장에 선 주인공이 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한국 과학기술원에서 유방암 줄기세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기초과학연구원에서 일하시는 과학자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과학과 음악 모두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2살 때 제3회 차이코프스키 국제청소년 콩쿠르 첼로 부문에서 1위를 한 것을 시작으로 여러 첼로 연주대회의 상을 받으면서 첼리스트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미국 뉴잉글랜드 음악원의 석사과정을 공부하면서 하버드 대학교의 세포생물학을 전공하게 됩니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 분자생물학과로 진학하여 박사학위까지 받았습니다.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 현재도 그는 하루 종일 이어지는 일정 속에서도 오후 8시만 되면 꼭 첼로를 잡습니다. 사람을 치료하고 싶은 고봉인 씨는 과학자이자 윤이상 작곡가를 좋아하는 첼리스트입니다. 그는 이번 해에도 첼로 연주회를 열어 과학의 길과 첼로의 길을 동시에 걷고 있습니다.

 

 

SF의 3대 거장이 된 과학자,
아이작 아시모프 (1920.01.02. ~ 1992.04.06.)

157-19-5
출처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73304&cid=59014&categoryId=59014

아이작 아시모프는 아서 C.클라크, 로버트 하인라인과 함께 “SF 3대 거장”으로 꼽히며, 생애 동안 쓴 작품은 단편과 장편을 포함하여 약 500편에 이릅니다. 그는 사실 보스턴 대학의 의과대학에서 생화학과 교수자리까지 오른 과학자인데요, 그런 그가 어떻게 전 세계가 열광한 소설을 써낼 수 있었을까요? 1920년 러시아 스몰렌스크 지방에서 태어난 그는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자 미국으로 이민을 갑니다. 그는 학창시절 부모님께서 하시던 편의점 일을 도우면서 책을 많이 읽었는데, 자신이 읽은 책을 각색해서 친구들에게 들려주곤 했습니다. 그런 그가 편의점 진열대에 있는 SF 전문잡지 “Amazing Stories”을 본 후부터 SF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것이 그가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이죠. 콜롬비아 대학으로 진학한 그는 화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받고, 보스턴 대학교에서 생화학 담당 강사를 지냈습니다. 35세에 조교수의 자리에 올랐지만 곧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작가에 전념합니다. 이미 11세에 미완성작이지만 창작에 도전하였고, 18세에 만난 “astounding stories”의 편집장 존.W.캠벨 2세의 조언을 거름 삼아 SF를 꾸준히 기고하고 있었습니다. 31세 때 가장 유명한 데뷔작인 “파운데이션”을 발간하여 죽기 직전 50년 동안 7권의 시리즈물을 집필하였고,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 등 저명한 상들을 휩쓸었습니다.

조교수를 그만 둔 후로는 SF 소설보다 과학 교양서에 집중하는데, 화학, 생물학, 물리학, 천문학 등 과학 전반을 쉽게 해설한 논픽션을 써내면서 과학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런 그의 명성은 그의 이름을 딴 소행성, 잡지, 상 등을 보면 여실히 느낄 수 있으며, 보스턴 대학에서는 이를 높이 평가하여 종신 교수 직책을 주었습니다.

157-19-w
글_김채원 기계공학과 16학번(알리미 22기)